정리유감

지금 지내는 집이 깨끗해 본 날을 따져보자면 열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분명 올해 초엔 나름 괜찮은 날이 며칠 있었다. 년초에 짐들을 좀 정리해보자는 결심을 하고 이것저것 수납 할 수 있는 장들을 대거 들였었기 때문이다. 가구들을 들이고 그 안에 짐들을 정리 했을 땐 기분이 참 좋았다. 근데 평소의 집 상태로 돌아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나의 기분은 더욱 슬퍼졌던 것이다.

 

상담하는 데에서 이 문제에 대해 물어 보기도 했다. 선생님은 내가 앨범 준비 하느라 바빠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나라는 사람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자책 하지 말라 하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땐 그래 내가 바쁜거다…작업만 끝나면…하며 적당히 합리화 했지만, 앨범은 이제 6월 말에 나왔고 벌써 8월에 접어 들었다. 여전한 나의 집안 상태는 나의 문제로만 보이고 자책하고 싶은 걸 참을 수 없다.

 

곰곰이 나는 왜 이런 생활습관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원인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다.

 

1. 호더 기질이 있다.

이럴 때 저럴 때 요긴 하겠지? 이걸 쓸 상황이 언젠간 오겠지? 혹은 와 나 이거 갖고 싶어! 의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쉽게 물건을 들이고, 같은 생각으로 물건을 잘 못 버린다. 나름 경계심을 갖고 이게 정말 나에게 필요한지 정말 이걸 내가 쓰게 될지 때마다 자문해보려 하지만, 거의 무의식적인 차원으로 처음의 사고 방식이 내 마음을 압도적으로 지배해버려, 결과적론 버려지는 것들에 비해 새로운 물건이 더 쌓여만 간다.

 

2. 비슷한 물건을 중복적으로 모으는 경향이 있다.

어떤 카테고리 내지 브랜드에 관심이 생기면 그 같은 범주에 있는 물건을 중복적으로 모으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보기엔 별반 다르지 않은 똑같은 걸 계속 들이는 걸로 보일 수도 있다. 문제는, 처음엔 그래도 그것들 사이에 분명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다 들인다고 생각해놓고, 나중에는 왜 이걸 두 세 개씩 들였었지? 하고 스스로도 모르겠어서 기막혀 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신발도 옷들도 악기도…그래서 고양이도 셋?(이건 잘한 일)

 

3. 물건을 쓰고 제자리에 두기를 말 그대로 자꾸 깜빡한다.

어디선가 물건을 꺼낼 당시엔 분명히 쓰고나면 다시 되돌려놔야지… 라는 생각을 한다. (일부러 해야 한다…)

그러는데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물건들이 하나둘씩 랜덤한 곳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문득 어딘가 놓인 물건을 보며 이게 왜 여기 있지? 싶은 경우가 잦다. 그런 경우가 누적되고 그러다 보면 해결하지 못한 선 연결하기 게임처럼 제자리로부터 떨어진 물건들이 사방팔방 흩뿌려 지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많이…

 

4. 나에게 정리는 일로만 느껴진다.

나는 음악 작업을 하면서 트랙 정리를 하고 컴퓨터 파일들 폴더들 정리를 하고 일정 정리를 하고 등등 일을 하는 데서 이미 모든 정리 에너지를 다 쓰는 것 같다. 쌓여만 가는 물건들에 대한 물리적인 정리는 내게 있어 또 다른 일이고 너무 막막하고 방대하게 느껴진다. 과장되게 말하자면 무슨 만화처럼 물건 괴물들이 항상 나를 쫓는 느낌이다. 생각만 해도 압박감이 밀려 오고 스트레스를 받고 해치우면 신나겠다 라는 기분이 들지를 않는다.

생각해 보니 내게 비슷한 느낌을 주는 다른 게 있었는데 바로 학생 때 시험, 과제, 입시 생활 같은 학업 그 자체였다. 자발적으로 학교 공부를 하며 즐거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학업은 항상 약간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이고 학교 공부는 확실히 불호였다. 이제 보니 정리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불호인 것 같다.

 

언젠가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들이 자꾸 집을 넓혀가려는 가장 큰 이유는 물건이 쌓여만 가서 라는 거다. 살다 보면 다들 비슷하게 무의식적으로 물건을 쌓아두기 때문에 자연스레 더 큰 집이 계속 필요하다는 거다. 그렇다면 나의 경우엔 집을 넓혀가는 속도가 좀 빨라야 할 것 같은데 그건 절대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없는 거니까 물건을 잘 처분하고 정리 해야만 한다. 머리에 힘주고 살아야 한다.

 

해결책은 분명하다. 쓴 물건 제때 치우고 제자리에 잘 두고 물건 자꾸 들이지 말고 버릴 것 과감히 버리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벌써 여기서부터 나는 이것들을 또 해결해야 할 일로 여기고 있음을 느낀다. 살며 애쓰고 실천해야 할 과제로 여기는 것이다. 어릴 때 부터 과제를 끔찍히 싫어했다. 정리는 과제다. 이 저주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이걸 쓸 시간에 치우면 되지 않나?의 차원이 아니다. 물건들을 정리하고 치우는 것 자체에 노이로제가 있는 것 같다! 이게 저랍니다. 어떡하나요 선생님?!

지난 솔루션스 주말

솔루션스는 토요일 공연 전 오전 리허설. 앞서 리허설 하던 영국에서 오신 분들이 자기들 배정된 리허설 시간을 넘겨 우리 시간까지 상당히 잡아먹어서 원래는 여유로이 진행됐어야 할 우리의 리허설 시간이 상당히 많이 축소됐다. 원래보다 절반되는 시간 동안 겨우 바틋하게 소리 잡고 일부 곡들만 잘 뽑히는지 확인하는 정도로 마침. 공연 시작 때 까지 나가는 소리나 모니터 상태가 최적의 상태는 아녔다. 좀 빈정 상한 부분. 영국 밴드 님들 이제 님들 미워졌어 그것만 아세요., 공연도 안 봄.

 

아무튼 그래도 다들 심기일전하여 공연 무사히 마침. 소소한 요소가 많아져야 우리도 보는 이들도 더 몰입된다는 걸 느낌. 공연 마치고 짐 챙겨와 스튜디오에 다시 두고 리카르도에서 한 숨 돌린 후, 라멘 먹고 밤 중엔 한솔과 일당들과 스트레인지프룻서 소소하게 한 잔 함. 좀 취한 한솔이 신나서 솔루곡들 틀어둔거 맞춰서 (사실 안맞음) 드럼 재탕 쑈 함. 모두 말림.

 

많은 분들이 남긴 영상 사진 둘러보며 안심된 마음으로 주말 보냄. 에고 서칭(이라기 보단 밴드 서칭) 약 간 중독된 상태인데 비계든 뭐든 많이 좋아요 하고 아무튼 많이 올리셈. 티끌모아 태산…

 

약간의 허함이 밀려옴을 앞으로의 일정 확인과, 이런저런 계획 세우며, 만화 보고 게임 좀 하며 달랬다. 공지된 일정들 외에 더 많은 게 있을 (있어야 할?) 계획. 잘 할 수 있겠지?

 

기분 좋음의 비율

기분이 좋으면 살 맛이 날 것이고, 기분이 안 좋으면 살 맛이 안 날 것이다.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일이 많아야 더 살아볼 기운이 날텐데, 불행과 불안에 민감한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내면에서 안 좋은 걸 더 세밀화 하고 곱씹고, 경계한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이미 굳어진 경향이라 냅두면 그 안좋은 경향을 절로 따라간다.

 

그럴 때마다 그러한 생각의 단절이 억지로 필요하다. 매일이 좋은 일의 연속이라 불안감 따위 덮어버리고 잊고 산다면 행복하겠지?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기쁨과 행복의 감정에 이내 익숙해지고 무뎌진다. 행복의 순간은 점점 짧아진다. 행복감의 지속시간이 길지 못하다면 그 이후 밀려오는 공허함, 불안에 대해 그만 생각하든지, 대신 가치판단이 별로 필요 없는 일에 몰두하든지 하는 게 낫다.

 

몰두하는 일이 어떻게든 내게 평안을 주고 긍정적인 일이면 다행이다. 그 일 자체가 다시 또 나를 힘들게 하고, 비관하게 하면 또 살 맛이 안난다. 그러면 또 혹시 살맛이 날까 싶은 다른 일을 기웃거리겠지.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 그래도 내일의 뭔가를 기대하며 산다는 건 대충 저런 프로세스의 연속일거다. 나는 저런 식의 도식화와 구분에 집착하는 편이다. 좋은 거, 나쁜 거, 기운 나는 거, 기운 빠지는 거… 그건 내가 하는 일과 내게 일어나는 일과 사람…에도 적용되기 마련이다. 어쨌든 스트레스에 민감해서일거다. 그래서 나는 또 생각에 매달리는 것이다. 구분하고, 정리하고, 대비하고 할 건 하고, 포기도 하고…머리 속은 공장같이 계속 돌아간다.

 

기분이 마냥 좋고 싶지만 부단히 애쓰고 피곤하지 않고야 그럴수가 없다. 다만 애쓰고 뒤따라 오는 기분 좋음이 그래도 기분상 인생의 반은 차지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 이하면 이하일수록 삶이 약간 오기, 투쟁 그런 형태가 되는 거 아닌가? 나는 기력이 딸려서 그건 좀 위험하다. ‘물컵이 반이나 찼네!’ 까지가 적정 허용선이다. 나는.

 

예전엔 줄곧 나의 감정상태가 ‘0점’ 에서 오락가락한다고 느꼈다. 0을 기준으로 마이너스로 갈 때도 있고, 업 될 때도 있는 거다. 항시 우울하지도, 항시 행복하지도 않은 사람. 그래도 새로운 좋은 일들도 많았던 거 같다. 좋은 음악, 좋은 영화, 좋은 개인적 경험들. 지금도 별반 다름은 없지만, 무뎌지는게 많아지고 체력도 딸리고 하면 앞으론 점점 마이너스로 치우치게 되는 건 아닐까 좀 걱정이 된다. 성격 상 매일이 행복한 노년의 모습은 딱히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불행으로 치닫고 싶은 것도 딱히 아니다. 그저 되는대로 부단히 뭔가 하겠지. 뭔가를 하며 잊을 건 잊고, 또 거기서 나름 뭔가를 얻으며 여력이 되는 한 까진 0점을 잡아보는 것. 그런 모습이 차라리 내가 지향하는 모습이 될 것 같다.

시간

 

뭐든 한 번 시작하면 몰두를 잘 하는 편이다. 뭘 앉아 시작하면 방대한 볼륨의 게임 엔딩도 금방 보고, 곡 작업도 앉아 있는 시간 만큼은 진척을 보는 편이다. 그러는 동안 고개를 앞으로 빼고 열중하는 습관 때문에 거북목이 되었다. 등 허리도 많이 굳은 편이고 자주 결리는 편이다. 그나마 요가 하며 나아졌었는데 건강 때문에 쉬었더니 도루묵 된 거 같다.

 

반대로 멍 때리기 시작하면 하염없이 멍을 때린다. 핸드폰도, 생각도, 게임도 아무것도 안하고 시간을 보낸다. 종종 깨 있는 채로 잠든 듯한 시간을 보낸다. 대개 식탁 앞에 앉아 있거나 서성이거나 침대에 누워 있거나 하는데,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내가 지금까지 뭘 했지? 돌이켜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안했다. 반 나절, 한 나절이 그런 식으로 훌렁 가는 일이 허다하다. 특히 길던 앨범 작업이 끝난 요즘도 그런 시기이다. 그래도 한동안 뭔가에 집중했던 머리와 몸이 회복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리라 여기며 산다.

 

모두 다 내게 필요한 시간이다. 어떤 형태로든 나는 나의 시간을 보낸 다는 걸 자각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한다. 자의가 아닌 일에 떠밀려 내 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건 우울할 것 같다. 나는 어쨌든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다행.

 

한편으로 확실한 건, 나이가 들수록 점점 시간의 흐름을 빠르게 느낀다는 것이다. 무언가에 몰두를 하든, 반대로 멍을 때리든 효율이 점점 안좋아져 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엔진처럼 내 안에서 시간을 빨리 소비해가는 것 같다. 차분함을 배운만큼 어쩔 수 없이 흘려보내는 것에 대한 조급함도 내 안에 굳어져간다. 어쩔 수 없다. 다 내 안의 나이고 버릴 수 없는 성격인 것 같다.

 

갈수록 접하는 경험의 색이 비슷해져가고 익숙해져서일까? 새롭지 않은 반복되는 경험은 이제 머리가 소중히 여기지 않고 무심히 흘려 보내서인가? 모든게 새롭고 찬란하던 아이일 순 없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웬만한 일엔 꿈쩍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 자체가 조금은 서글프다. 무뎌짐을 지금의 나는 괜히 서글프게 느낀다. 사람은 살수록 비유적으로든 실제로든,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무거워져 간다.

 

각성상태로 시간이 마치 85프로 정도로 천천히 흐르는 듯한 느낌 속에 살던 시기가 있다. 한 10여 년 전 까진 그랬던 것 같다. 음악도 천천히 느껴지고 자전거를 타며 지나치는 풍경도 천천히 느껴졌다. 요즘은 내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 실제의 120프로 정도인 거 같다. 눈 깜빡하면 시침 분침이 다른 데 가 있고, 일정이 코 앞에 다가와 있다. 일시적인 거라 여기고 싶지만 총체적으로 그렇다. 나중엔 얼마나 더 빠르게 느껴질지, 벌써 약간은 무섭다. 무서운 가속.

 

시간은 이리도 빠른데, 내가 약간이라도 기울어졌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채로 관성적으로 살다보면 나도 모르는 새 나오기 힘든 도랑으로 빠질지 모른다. 몸이든 정신이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은 싫다. 다소 조심성 없는 나이기에 더 조심하고 싶다. 내 습관과 태도에 있어 약간의 개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가는 세월 잡을 순 없다지만, 어떻게 좀 그나마 괜찮은 길로 가게끔 유도는 계속 해야지 뭐. 시간 잡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