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한 번 시작하면 몰두를 잘 하는 편이다. 뭘 앉아 시작하면 방대한 볼륨의 게임 엔딩도 금방 보고, 곡 작업도 앉아 있는 시간 만큼은 진척을 보는 편이다. 그러는 동안 고개를 앞으로 빼고 열중하는 습관 때문에 거북목이 되었다. 등 허리도 많이 굳은 편이고 자주 결리는 편이다. 그나마 요가 하며 나아졌었는데 건강 때문에 쉬었더니 도루묵 된 거 같다.
반대로 멍 때리기 시작하면 하염없이 멍을 때린다. 핸드폰도, 생각도, 게임도 아무것도 안하고 시간을 보낸다. 종종 깨 있는 채로 잠든 듯한 시간을 보낸다. 대개 식탁 앞에 앉아 있거나 서성이거나 침대에 누워 있거나 하는데,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내가 지금까지 뭘 했지? 돌이켜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안했다. 반 나절, 한 나절이 그런 식으로 훌렁 가는 일이 허다하다. 특히 길던 앨범 작업이 끝난 요즘도 그런 시기이다. 그래도 한동안 뭔가에 집중했던 머리와 몸이 회복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리라 여기며 산다.
모두 다 내게 필요한 시간이다. 어떤 형태로든 나는 나의 시간을 보낸 다는 걸 자각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한다. 자의가 아닌 일에 떠밀려 내 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건 우울할 것 같다. 나는 어쨌든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다행.
한편으로 확실한 건, 나이가 들수록 점점 시간의 흐름을 빠르게 느낀다는 것이다. 무언가에 몰두를 하든, 반대로 멍을 때리든 효율이 점점 안좋아져 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엔진처럼 내 안에서 시간을 빨리 소비해가는 것 같다. 차분함을 배운만큼 어쩔 수 없이 흘려보내는 것에 대한 조급함도 내 안에 굳어져간다. 어쩔 수 없다. 다 내 안의 나이고 버릴 수 없는 성격인 것 같다.
갈수록 접하는 경험의 색이 비슷해져가고 익숙해져서일까? 새롭지 않은 반복되는 경험은 이제 머리가 소중히 여기지 않고 무심히 흘려 보내서인가? 모든게 새롭고 찬란하던 아이일 순 없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웬만한 일엔 꿈쩍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 자체가 조금은 서글프다. 무뎌짐을 지금의 나는 괜히 서글프게 느낀다. 사람은 살수록 비유적으로든 실제로든,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무거워져 간다.
각성상태로 시간이 마치 85프로 정도로 천천히 흐르는 듯한 느낌 속에 살던 시기가 있다. 한 10여 년 전 까진 그랬던 것 같다. 음악도 천천히 느껴지고 자전거를 타며 지나치는 풍경도 천천히 느껴졌다. 요즘은 내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 실제의 120프로 정도인 거 같다. 눈 깜빡하면 시침 분침이 다른 데 가 있고, 일정이 코 앞에 다가와 있다. 일시적인 거라 여기고 싶지만 총체적으로 그렇다. 나중엔 얼마나 더 빠르게 느껴질지, 벌써 약간은 무섭다. 무서운 가속.
시간은 이리도 빠른데, 내가 약간이라도 기울어졌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채로 관성적으로 살다보면 나도 모르는 새 나오기 힘든 도랑으로 빠질지 모른다. 몸이든 정신이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은 싫다. 다소 조심성 없는 나이기에 더 조심하고 싶다. 내 습관과 태도에 있어 약간의 개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가는 세월 잡을 순 없다지만, 어떻게 좀 그나마 괜찮은 길로 가게끔 유도는 계속 해야지 뭐. 시간 잡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