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펑크 2024
요즘 한동안 게임 <사이버 펑크 2077>을 열심히 했었다.
마침 N/A 앨범 정서와 통하는 게 있기도 했다. 반지성주의와 자본주의가 정치고 도덕이고 뭐고 다 씹어 먹어버린 2077년의 디스토피아 세계를 이런 저런 에피소드들로 시니컬하게 풍자적으로 그려낸 게임이다. 처음 출시 당시 미완의 상태로 무리하게 발매해 욕을 오지게 먹었지만, 이후 3, 4년 간 사후 업데이트를 열심히 해 꽤 괜찮은 게임이 되었다길래 세일가로 구매해 큰 기대 없이 해봤다가 결국 빠져들어 엔딩까지 봤다. 심지어 멀티 엔딩이라 특정 분기점 이후 다회차를 해서 훑어가며 모든 엔딩을 봤다. 그만큼 즐길꺼리가 꽤 많은 볼륨이 큰 게임이었다.
게임에서 그려지는 2077의 LA는 막장이다. 광고가 반 강제로 집 거실에 홀로그램으로 떠 안 볼 수가 없고, 그 광고라는 것들은 죄다 노골적이고 선정적이다. 저질의 음식이나 음료가 즉석 조리되는 자판기가 집집마다 부엌에 있다. (지금도 사실상 똑같지 않나? 내 손 안의 구글 광고, 성인 광고, 내 손안의 로켓배송…) 거리에선 살인과 폭력이 빈번하고 다양한 갱단은 경찰과 기업들과도 사실 공생 관계라 합심하여 선량한 시민들을 등쳐먹고 괴롭혀댄다. 미래물 답게 신체 개조가 일반화 되어 돈이 많으면 몸 이곳 저곳을 개조하며 천수를 누리지만 가난하면 젊은 이들도 당장 언제 범죄나 병으로 죽을지 모른다. 의료는 철저하게 민영화 되어 부자들은 응급 상황시 2, 3분 만에 무력까지 겸비한 특수 의료팀이 비행정을 타고 나타나 모셔가지만 돈 없는 이들은 리퍼닥이라 불리는 비공인 의사들이 비공인 의료 시설에서 치료받을 수 밖에 없다. (한국도 의료 민영화를 향해 가는 듯…)
이런 세상에서 주인공 역시 용병 신분으로 생존을 위해 불법과 폭력을 저지르며 출세를 목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다가 모종의 이유로 시한부 목숨이 되고, 죽어가는 몸을 고치고자 의뢰를 받아 온갖 사건에 휘말리며 돈을 벌고 몸을 개조하고 무기를 늘려가며 사투를 벌인다. 오로지 자신을 위한 사투…
물론 그래도 자본주의를 까는 게임이니 만큼 주인공은 막장 세상을 살면서도 정의나 인간성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의뢰 와중에 선의냐 돈이냐를 택할 수도 있고, 특정 인물들과의 로맨스도 가능하다. 등장 인물들의 선역/악역 구분이 모호하고 적들도 그리 되기까지의 씁쓸한 사연이 있거나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각자 사연이 있고, 그런 사람들끼리 엮이다보면 희극도 비극도 일어나는 것이다.
게임을 하는 내내 카타르시스적 재미와는 별개로 약간의 우울함을 떨칠 수 없없다. 2077년이 돼야 세상이 저 정도로 막장이 되는 걸까? 아니, 세상은 이미 절반은 막장이다. 게임 2077이 그리는 세상은 이미 2024에도 어느정도 도래된 세상이다. 너무 분명하지 않은가? 양극화, 우경화, 각자도생은 이제 현실이고 어릴 때부터 배워온 형이상학적 가치 같은 거 인생에 1도 도움 안되고 남의 불행마저 이용하는 투기, 사기가 최고의 미덕이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 공동체 의식이란 게 그거 생각하는 사람들끼리나 통용되지 이미 빛바랜지 오래다. 그런 거 중시하는 사람들 끼리만 부둥부둥 하며 지내지 그 외엔? 거의 머 헬이다…
게임에서도 주인공의 갈등이 시작되는 지점은 그거다. 주인공은 세상이 어차피 매드맥스이기 때문에 철저히 이기적으로 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출신 집단으로부터 도태되고, 유일한 친구도 잃고, 목숨이 위태로워져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해야하는 절박한 입장이 되고서야 타인의 입장을 생각해보기 시작한다. 사실 악연으로 시작된 나르시스트인 ‘조니’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며 함께 정신적 성장, 각성 같은 걸 해서기도 한데, 아무튼 뭐 이래 보니 천사네 완전… 절박하면 남 사정 안보이고 밟는게 기본인데. 주인공 입장은 곧 우리네 입장이다. 세상은 점점 더 팍팍해지는데, 나도 살아야하는데, 나도 팍팍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 나라도 정신줄 안놓고 믿는 걸 추구하며 살아야 하나. 그런 고민이 줄기 주제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지구 반대편에선 트람프 할배가 다시 대통령으로 당선 확정되었다. 한국 상황도 뭐 말을 말자. 세상은 앞으로도 한동안 쭉쭉 우경화되겠지. 팍팍해지겠지. 이기적이어야 살기 쉽겠지. 나만 잘사는 게 최고, 돈이 최고가 되겠지. 예전 같으면 이런 날들에 삶의 의욕을 크게 잃었을 거 같다. 인류 절반의 우매함을 탓했을 거다. 헌데 이런 지도 오래되어가니 크게 담담함을 느낀다. 애써 마음을 누르고 많은 생각을 안해보려는 거 일수도 있다. 안그럼 너무 절망적일 거 같으니깐. 하지만 이런 상황이 되니 뭣보다 작은 다짐 같은 게 앞선다. 희망은 전혀 아니다. 우격다짐인가? 아무튼 해야할게 뭐고, 지켜야 할 게 뭐고, 나는 그게 죽이되는 밥이되든 그냥 할 수 밖에 없겠구나 싶다.
대단한 건 전혀 아니다. 내가 이전에도 믿고 다듬어 왔던 걸 계속 지켜야겠구나, 그 정도의 다짐이다. 게임의 주인공의 심정과 비슷하다. 그거라도 없으면 무너지겠지. 아직은 포기를 안하고 싶을 뿐이다. 세상이 사이버펑크 2024지만, 게임처럼 내가 총을 들고 싸우는 건 아녀도, 어쨌든 적당히 화내고 적당히 남 위하면서 나만의 믿음만 안 잊고 살련다. 당장 마음처럼 되는 일이 점점 없어지는 세상에서 과한 욕심은 버리련다. 다음 욕심을 위해서다.